32 extraordinary days


32.
서른 둘.
나는 올해 서른 둘입니다.
많은 나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
이게 또 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어서,
나도 모르게 "에효, 참 오래도 살았다" 싶어지는
그런 순간이 왕왕 찾아오지요.
뭐 그런 나이네요.

6월 초, 며칠 내내 비가 오고 흐리다가
어느 순간 화창하게 개이던 목요일.
그 날이 나의 생일이었어요.

생일에는 특히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.
스스로도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지만,
어쩔 수가 없더라고요.
아침에 아빠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맛있게 먹으면서도
자꾸 딴 생각이 드는 건,
그게 엄마표 미역국은 아닌 탓이지요. 그게 사실은 영 다른 거 거든요.
그렇다고 이 나이에 늙은 아버지한테 생일 밥상 받아놓고
울컥거릴 수도 없으니 가뿐히 한 그릇 뚝딱하고 출근하는 수 밖에요.

내 몹쓸 기억의 혀는 스물다섯에 마지막으로 먹었던
아픈 엄마표 미역국의 맛을 너무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.
그 맛이 어떤 맛이었냐하면,
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기 전에 심장에 들러서
엄마 뱃 속에서부터 쿵쾅 거리던 내 심장을
이내 시큰시큰하게 해 버리는 맛이었는데,
 그 맛이 내가 평생 기억하게 될 마지막 엄마표 미역국이 될 줄은
그 때엔 몰랐죠.
그 때 알았더라면
그 미역국에 방부제x100 이라도 타서
영구 보존하지 않았을까요, 나란 아이는. 

국민학교 다닐 적에,
엄마는 내 생일날 반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하시곤 했어요.
지금 생각해 보면,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개구쟁이 아이들 뒷치닥거리에
혼자서 요리도 다 해 내셔야 하니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텐데.
그런데 그 때의 난,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.
수업 파하고 애들이랑 우르르,
꼭 내가 앞장 서서 몰고 들어와 자리 잡고 앉으면
엄마는 요술쟁이처럼
탕수육에, 잡채에, 떡볶이에, 김밥에, 과자에, 케이크에..
한 상 가득 가득 차려주시고
어쩌면 그렇게도 좋아라 하는 내 모습을 보시면서
옅은 웃음 짓고 계셨을 지도 모르겠어요.
아무튼 그 날들에는
어쩐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 같아서
하루 종일 들떠 지내다가
생일날 밤이 저물어 갈 때는
 뭔가 또 되게 아쉽고.. 그랬었던 기억이 납니다.

그리워요.
왁자지껄한 어린 시절의 생일이.
그 때의 건강한 엄마가, 아픔 없는 내가.
그러다 결국에는
생각만 해도 혀가 쓰고 심장이 아린
마지막 미역국의 기억마저도
그리워져 버리는 거에요.

32.
서른 둘.
나는 이제 서른 둘입니다.
적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나이죠, 네네.
그런데 아마 나는
서른 셋의 생일에도
서른 넷의 생일에도
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계속
생일날만 되면
엄마의 마지막 미역국 맛을
곱씹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
아마 그럴 거에요.

이렇게 한 치도 자라지 않는 나,이지만
이런 나를
낳아주고 길러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준
우리 엄마
고맙습니다.

잘 지내요, 우리.
거기에서, 그리고 여기에서.


덧글

  • 슉슉 2011/06/21 18:08 # 삭제 답글

    거기에서, 그리고 여기에서.를 한참 바라봄 ㅎ
    다음호든 그 다음호든
    엄마 글 실어볼까. 좀 더 다듬으면 될 듯.
  • lento 2011/06/22 13:34 #

    슉슉이다. 오오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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